↑↑ 두산리 전경.

양북면 두산리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마을이다. 마을로 진입하는 어귀가 좁아 한때는 농업용수를 대기 위한 댐을 건설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거론된 정도였지만 분지 특유의 아늑한 느낌이 드는 마을이다.

두산리는 장아곡과 양지마을 등 2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돼 있다. 장아곡은 김해김씨 집성촌으로 서산이 마치 활의 대처럼 생겼고 마을을 안고 흐르는 실개천이 활시위처럼 생겼다고 해서 장궁동이라고 불렀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실개천의 물이 청아하다고 해서 장아곡이라고 불리게 됐다. 양지마을은 다른 동네에 비해 일출 시간이 빠르고 양지바른 곳에 위치한다고 해서 양지라고 불렀다.

↑↑ 두산리 최고령자인 김해김씨 종부 유분선 할머니.


두산리는 58가구 11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민의 90%는 쌀농사를 짓는 농민들이다. 큰 도로를 따라 흐르는 대종천을 건너야 마을에 이를 수 있어 튼튼한 다리 건설이 시급했고 1976년 새마을 사업으로 두산교를 지어 마을사람들이 많이 편해졌다고 한다.

↑↑ 교육훈련부 직원들이 마을 주민과 차담을 나누고 있다.


그런 산중마을이었지만 두산리는 전통적인 양반마을이다. 장아곡은 김해김씨인 문옹공 김석견이 16세기에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김석견은 자신의 세 아들과 사위 등 친척 10명을 대동해 임진왜란 때 의병군을 조직했고 관군과 합세해 신출귀몰한 전술로 왜구를 무찔렀다고 전한다. 김석견은 그 공으로 통정대부 병조참의에 녹훈됐다. 후손들은 김석견과 세 아들을 기리는 향사를 지금까지 거행하고 있다. 원래는 2박3일 동안 제의를 치렀지만 지난해부터 간소화해서 하루에 치른다.

↑↑ 김종섭 이장(오른쪽)이 김해김씨 종갓집 사랑채에서 주민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현재 장아곡에는 김석견의 17대손이 살아가는 종가가 있고 그 종가에 가문의 사당인 가묘까지 있어 전통적인 양반가문임을 자랑한다. 두산리 김종섭 이장은 "원래 양북시장을 두산리에 세우기로 했지만 어른들이 양반 마을에 시장이 들어서면 분주하고 어지럽다며 반대해 결국은 어일에 세워졌다"며 "좋게 말하자면 양반마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세속에는 어두운 폐쇄적인 마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양지마을은 전국에서 유일한 손으로 짜는 명주를 생산하는 곳이 있다. 명주는 대부분 기계로 생산을 하지만 이곳에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70~80대 할머니들이 작업장에 모여 분주하게 고급 명주를 생산한다. 두산리로 접어드는 도로의 가로수가 뽕나무인 것은 바로 이 마을이 명주마을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이곳에서 손명주를 짜는 할머니들은 2002년부터 '두산 손명주 연구회'를 만들어 현재까지 전통의 맥을 이어오고 있으며 2017년 국가무형문화재 제87호로 지정됐다. 두산리에는 2010년 이들의 손명주 기술을 보존하기 위해 '전통명주전시관'을 세워 전국에서 모여드는 관광객들에게 우리 전통문화를 선보이고 있다.

↑↑ 두산 명주마을 손명주연구회 회원들이 명주를 짜고 있다.


두산리의 최고령자는 김해김씨 김석견 가문의 종부인 유분선(92) 할머니다. 유 할머니는 이웃마을인 용당리에서 입향조 김석견의 16대손인 김상구에게 19살에 시집와 지금까지 종가를 지키고 있다.

↑↑ 두산리 장아곡에 처음 정착한 김해김씨 입향조 김석견을 모신 두산서당에서 종손이 향사를 지내고 있다.


유 할머니는 "시집올 때는 몰랐지만 막상 시집오고 나서 손님 치르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며 "제사며, 차사며 수십 차례 치르다 보니 종부살이가 참으로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친인척들에게 존경도 받고 며느리가 들어와 중부살이를 물려주고 나니 많이 편해졌다"며 "한때 송전리까지 합해 300호에 이르는 가문의 종부라는 점에서 자부심도 없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 두산리 장아곡의 김해김씨 종갓집에 있는 가묘.


두산리의 월성원전 자매부서는 교육훈련부다. 황인찬 차장은 "두산리는 전통적인 양반 마을이라 주민들이 예의바르고 점잖은 편이며 전통 기술로 만든 손명주의 고장이라는 점에서 자매부서로 매우 자랑스럽다"며 "주민들과 수시로 교류하면서 배울 것은 배우고 도울 것은 돕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