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라즈 보스턴 거리에 있는 사아디의 영묘. 하페즈의 영묘처럼 개방형은 아니지만 숭고한 성전처럼 지어졌다.

지난해 미국의 이란 제재 복원으로 한때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했던 대이란 교류가 다시 막혔다. 그러나 이란은 페르시아 제국의 중심지로 실크로드를 통한 신라와의 교역이 활발했던 곳이다. 익숙하지만 낯선 이란의 이야기를 통해 21세기 실크로드를 꿈꿔본다.

하페즈보다 1세기가 앞선 또 한 사람의 시라즈 출신의 시인은 사아디(1184~1291)다. 그도 하페즈처럼 어린 시절 가난하게 자랐다. 그러나 하페즈는 스스로 도의 경지에 오른 시인이었다면 사아디는 바그다드에서 아랍문학, 역사, 법학을 공부한 지성인이었다. 사아디는 30여년에 걸쳐 시리아, 이집트, 인도 등의 여러 국가를 돌며 방랑생활을 했다. 그래서 그를 '방랑시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사아디의 석곽. 석곽 위와 벽면에는 사아디의 시가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방랑시인 사아디, 지성으로 교훈을 노래하다
 
사아디는 주로 교훈시를 썼다. UN 본부의 한 건물에는 그의 시 한 수를 걸어뒀다. "한 뿌리에서 인류는 나왔지/그리고 창조로 바탕을 이뤘지/가지 하나만 충격을 받아도 충분하지." 인류 평화를 염원하는 UN의 이념에 부합하는 시다.
 

사아디의 영묘는 시라즈 보스턴 거리의 끝에 있다. 넓은 정원 형태로 된 이 영묘는 하페즈의 영묘와는 조금 다른 양식을 띄고 있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화려했지만 여러 차례 보수공사를 거듭하면서 매우 단순하게 바뀌었다고 한다. 하페즈의 영묘처럼 개방된 공간이 아니라 한 건축 안에 석곽이 갇혀 있다. 그러나 하페즈의 영묘와 같이 대리석 석곽과 건축물의 벽에는 사아디의 시로 가득 채워져 있다.


↑↑ 사아디의 영묘는 페르시아 전통 건축양식을 잘 구현했다. 중세 페르시아 궁전같은 몸체와 이슬람 성전의 전형인 돔이 조화롭게 구성됐다.


하페즈와 사아디의 영묘는 그들이 숭배하는 시인의 영묘이면서도 시라즈 시민들의 쉼터 노릇도 하고 있다. 영묘에는 밤늦은 시간에까지 연인들이 곳곳에서 데이트를 즐긴다. 엄격한 이슬람 문화 속에서도 젊은이들의 사랑은 자유로운 곳이 이란이다.

시라즈는 이처럼 이란의 문학과 예술의 본고장이다. 페르시아 정신의 핵심인 것이다. 또 장미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우리는 장미의 원산지가 영국인 것처럼 오해하고 있다. 약 2000여년 전 시라즈에서 장미가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했고 시라즈에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래서 시라즈를 '시와 장미의 도시'라고 일컫는다.

↑↑ 20세기 이란의 대표시인 포루그 파로흐자드. 남성 우월주의 이슬람 문화권에서 강렬한 페미니즘을 주창하며 불꽃같은 시를 남겼던 그는 30대 초반에 세상을 떠났다.
■뜨거운 삶을 살다간 여류시인 포루그 파로흐자드는 시대의 '희생양'

세월이 흘러 20세기 이란에서는 한 여류시인이 등장했다. 20세기 이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시인 중 한 사람인 포루그 파로흐자드였다. 테헤란의 군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16세에 먼 친척과 결혼했지만 아들 하나를 낳고 곧 이혼했다. 그 후 시를 쓰기 시작했고 강렬한 페미니즘을 주제로 했다. 보수적인 이란 사회는 일시에 들끓었다.
 
포루그는 유럽으로 건너가 9개월을 머물면서 영화감독 에브라힘 골레스턴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의 영향을 받은 포루그는 타브리즈의 나환자 수용소를 방문해 다큐멘터리 영화 '그 집은 검다'라는 기념비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이 영화가 결국 이란의 뉴시네마를 이끄는 교과서가 됐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란의 유명 영화감독들은 모두 포루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1967년 포루그는 자신의 지프차를 타고 가던 중 맞은편에서 오는 스쿨버스를 피하려다 벽에 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병원으로 옮겨지는 도중 포루그는 32세의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일부에서는 이란의 엄격한 이슬람 문화가 그녀의 혁명적 페미니즘을 수용하지 못하고 암살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녀의 무덤은 시대적인 배경 때문인지 하페즈나 사아디의 영묘처럼 화려하게 꾸며져 있지는 않다. 테헤란 외곽 공동묘지에 자신의 시 '선물'을 새긴 비석 하나로만 치장된 채 쓸쓸하게 묻혀 있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나의 작은 밤 안에, 아/바람은 나뭇잎들과 밀회를 즐기네/나의 작은 밤 안에/적막한 두려움이 있어//들어 보라/어둠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가 들리는가/나는 이방인처럼 이 행복을 바라보며/나 자신의 절망에 중독되어 간다//들어 보라/어둠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가 들리는가/지금 이 순간, 이 밤 안에/무엇인가 지나간다/그것은 고요에 이르지 못하는 붉은 달/끊임없이 추락의 공포에 떨며 지붕에 걸쳐 있다/조문객 행렬처럼 몰려드는 구름은/폭우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한순간/그 다음엔 무/밤은 창 너머에서 소멸하고/대지는 또다시 숨을 멈추었다/이 창 너머 낯선 누군가가/그대와 나를 향하고 있다//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푸르른 이여/불타는 기억처럼 그대의 손을/내 손에 얹어 달라/그대를 사랑하는 이 손에/생의 열기로 가득한 그대 입술을/사랑에 번민하는 내 입술의 애무에 맡겨 달라/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포루그 파로흐자드의 시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의 전문이다.
 
이란의 문학적 전통을 이어오던 포루그 파로흐자드의 시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는 이란을 대표하는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고 1999년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이상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