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지간한 모스코보다 화려하고 아름답게 치장된 하페즈의 영묘.

지난해 미국의 이란 제재 복원으로 한때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했던 대이란 교류가 다시 막혔다. 그러나 이란은 페르시아 제국의 중심지로 실크로드를 통한 신라와의 교역이 활발했던 곳이다. 익숙하지만 낯선 이란의 이야기를 통해 21세기 실크로드를 꿈꿔본다.

"그대 검게 될 운명이라면/성수라 할지라도 희게 할 수 없으리."

이란의 영화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에 나오는 대사다. 이 영화는 이란의 산골 마을에 최고령 할머니의 죽음과 장례 의식을 촬영하기 위해 온 방송국 PD가 마을 사람들의 삶과 가까워지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의미를 깨달아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위의 대사는 주인공이 마을의 소년과 골목길을 걷다가 소년의 입에서 흘러나온 시의 한 구절이다. 소년은 그 시를 자신의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즐겨 외던 시라고 소개했다.
 
↑↑ 이란의 민족 시인 하페즈의 영묘. 시민들이 하페즈의 석곽묘 앞에서 참배하고 있다.

■시를 사랑하는 나라 이란, 시 한 두수 외는 건 일상

그리고 주인공은 우유를 구하기 위해 간 어두운 지하 창고에서 만난 한 소녀에게 또 다른 시를 읊어준다. "사랑하는 이여/내 집에 오려거든/부디 등불 하나 가져다 주오/그리고 창문 하나를/행복 가득한 골목의 사람들을/내가 엿볼 수 있게" 여성이 자유롭지 못한 이슬람 문화권에서 불꽃처럼 살다간 이란의 여류시인 포루그 파로흐자드(1935~1967)의 '선물'이라는 시의 한 부분이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이 여류시인의 시를 읽고 영감을 얻어 영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영화의 제목을 포루그의 시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를 그대로 차용했다.

한 편의 시가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는 나라가 이란이다. TV 뉴스 프로그램의 앵커가 시를 읽고 뉴스를 시작하거나 클로징 멘트로 시를 암송하는 나라가 이란이다.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시 한 두 수를 외는 것은 기본이고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시를 통해 에둘러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이란 국민들이다.

이란인들이 '민족시인'으로 추앙하는 4대 시성은 모두 1000년 전의 시인이다. 페레도우시, 오마르 하이얌, 사아디, 하페즈다. 앞의 두 사람은 이란 북동부의 종교도시 마샤드 출신이고 뒤의 두 사람은 남부도시 시라즈 출신이다.

시라즈에는 사아디와 하페즈의 영묘가 있어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들의 영묘는 마치 잘 지은 공원이나 사원처럼 단장을 했고 사람들은 시민들은 영묘를 찾아 시인의 석곽을 어루만지며 그의 시를 암송한다. 마치 코란의 한 구절을 외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이 경건하고 애절하다.

해질 무렵 찾아간 하페즈의 영묘에는 퇴근길의 시민들이 줄을 이었다. 하페즈의 영묘는 시라즈를 가로지르는 로크나바다 강변에 있으며 약 2만㎡의 넓은 공원을 형성하고 있다. 가족 단위로, 혹은 연인끼리, 또는 한 무리의 모임이 어둑해지는 영묘 공원에 가득 모였다. 한 시민에게 물었더니 "사시사철 가리지 않고 시민들이 민족시인의 영묘를 찾아 그의 시를 외고 시 정신을 기리면서 매일 성황을 이룬다"고 말했다.
 
↑↑ 하페즈의 영묘에는 밤낮으로 참배객이 붐빈다. 이란에서 하페즈는 신격화 된 민족시인이다.

■술과 사랑을 노래한 하페즈, 서민의 삶의 연민 역설로 표현

하페즈의 유해를 모셔둔 석곽에는 그의 시가 화려한 페르시아어로 새겨져 있었고 참배객들은 그 석곽에 둘러 앉아 들고 온 시집을 읽거나 암송했다. 한 시낭송가가 유려한 페르시아어의 성조로 하페즈의 시를 낭송하자 시민들은 경청하다가 박수로 환호했다. 낭송가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하페즈의 시는 의미는 알 수 없지만 간절하고 호소력이 짙었다. 또 아름다운 페르시아 민요 한 자락을 듣는 느낌도 들었다. 종교 의례인 것 같기도 하고 즉흥적으로 일어나는 퍼포먼스 같기도 했다.

석곽을 감싼 영묘의 정자는 화려하다 못해 눈이 부실 정도다. 이슬람 탁발승의 모자 형상을 본떠서 지었다는 이 영묘는 이슬람 사원의 벽면을 장식한 페르시아 문양보다 화사하게 치장됐다. 종교적 엄숙함에서 벗어나 훨씬 더 예술적이고 정서적이다.
 
↑↑ 한 시낭송가가 하페즈의 시를 낭송하고 있고, 시민들은 엄숙한 분위기로 듣고 있다.

하페즈는 14세기에 활동한 시인이다. 그는 페르시아의 서정시 '가잘'을 썼다. 1320년~25년 사이에 태어나 1389년~90년 사이에 세상을 떠났다는데 생몰연도가 정확하지 않다. 하페즈의 아버지는 석탄 장사를 하다가 실패해 아내와 아들에게 엄청난 빚을 남기고 떠났다. 그 가난하고 힘든 삶에서도 하페즈는 천재적 재능을 보였다. 그의 이름인 하페즈는 '코란을 모두 외운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가 외는 코란을 귀동냥으로만 듣고 모두 암기했기 때문에 그에게 붙여진 별칭이다.
 
하페즈의 시는 술과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으며 신과 연인에게 바치는 연시 형식을 띄고 있지만 서민들의 삶에 대한 연민과 위선에 대한 경멸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그가 살아온 인생의 결과물인 것이다. 그의 시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영원한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 최고의 가치가 사랑과 평화니 당연한 귀결이다. 페르시아어권에서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성인'의 반열에 올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