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샤푸르1세 왕이 로마제국의 33대 황제인 발레리안을 제압한 모습을 새긴 탕게초간의 부조. 발레리안 황제가 샤푸르 1세의 말발굽 아래 짓밟힌 모습(붉은색 원안)은 페르시아인들에게는 자부심이 되지만 로마인들에게는 더 없는 치욕의 역사로 남아 있다.

지난해 미국의 이란 제재 복원으로 한때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했던 대이란 교류가 다시 막혔다. 그러나 이란은 페르시아 제국의 중심지로 실크로드를 통한 신라와의 교역이 활발했던 곳이다. 익숙하지만 낯선 이란의 이야기를 통해 21세기 실크로드를 꿈꿔본다.

낙쉐로스탐의 부조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산왕조의 샤푸르 1세가 로마 제국의 33대 황제였던 발레리안을 전쟁 중에 포로로 잡은 모습이다. 발레리안은 말에 올라탄 샤푸르 1세 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을 선언하고 있다. 페르시아의 왕의 기세는 당당하고 발레리안은 한없이 초라하다. 그때 마침 바람이 불었는지 발레리안의 옷자락은 불안하게 펄럭이고 있다. 로마 황제가 전투 중에 죽은 예는 더러 있었어도 포로로 잡힌 예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로마로서는 치욕적인 사건이었고 페르시아는 이 사건을 크게 강조했다.
 
↑↑ 낙쉐로스탐의 부조 가운데 샤푸르 1세가 로마황제 발레리안의 항복을 받는 모습. 새푸르 1세의 위용은 당당하지만 발레리안의 모습은 초조하고 왜소하다. 그때 마침 바람이 불었는지 발레리안의 망토가 흩날리고 있다. 바로 로마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부분이다.

■로마황제 '굴욕적 항복' 담은 부조

발레리안은 7만 명의 군단을 끌고 유프라테스강을 건넜다. 그리고 에데사 성벽에 이르러 샤푸르 1세가 이끄는 페르시아 군대와 맞섰다. 발레리안은 이 싸움에서 대패했고 결국 샤푸르 1세에게 무릎을 꿇었다. 18세기 영국의 역사가인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에 발레리안이 샤푸르 1세에게 굴복할 당시의 모습을 "황제를 상징하는 자주색 옷을 입은 채 사슬에 묶인 발레리안은 몰락한 귀족의 모습으로 비춰졌고 페르시아 왕은 말에 올라탈 때마다 로마 황제의 목을 발판으로 삼았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페르시아의 역사에는 샤푸르 1세를 그렇게 매정한 군주로 표현하지 않았다. 샤푸르 1세는 생포한 발레리안을 자신이 만든 신도시 비샤푸르에 새로운 궁을 짓고 거기에서 여생을 보내도록 했다고 전한다.
 
↑↑ 낙쉐로스탐에서 약 2km 정도 떨어진 낙쉐라잡의 부조. 낙쉐라잡에는 페르시아 왕가와 신성의 힘을 표현한 다양한 부조가 있어 당대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낙쉐라잡 유적 페르시아 문화 '생생'

낙쉐로스탐에 그려진 사산왕조 왕들의 용맹스러운 모습은 더 있다. 낙쉐로스탐에서 빠져 나와 시라즈로 향하는 도로변에 문득 낙쉐라잡이라는 암각유적이 나타난다. 불과 2km 남짓 떨어진 이곳에는 왕들의 대관식 장면, 조로아스터 성직자들의 활동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샤푸르 1세가 로마황제를 물리치는 용맹스런 기마전투도와 로마황제의 굴욕적인 장면을 더 자세히 보려면 약간의 수고를 더해야 한다. 시라즈에서 버스로 약 2시간 30분 정도 호르무즈 해협 쪽으로 향하면 카제룬이라는 도시가 나온다. 이 지역이 바로 샤푸르 1세가 신도시로 건설한 비샤푸르가 있는 곳이다. 비샤푸르로 가려면 카제룬에서 다시 택시를 타야 한다. 약 20km 정도 북쪽 오지로 달리면 2000년 전쯤 건설된 신도시가 나온다.

샤푸르 1세의 전공을 생생하게 새긴 부조를 보려면 비샤푸르에서도 더 깊은 골짜기로 달려야 한다. 거기가 바로 탕게초간이다. 계곡을 끼고 있는 절벽에 새겨진 샤푸르 1세의 전승도는 페르세폴리스나 낙쉐로스탐에 비해 다소 소홀히 다뤄진 듯하지만 암각 유적으로는 인류의 문화유산급에 속한다. 그리고 거기서 만날 수 있는 한 장면은 페르시아인들에게는 무한한 자부심을, 로마인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기는 역사적 사실이 또렷하게 남아 있다.
 
↑↑ 탕게초간의 페르시아 장군들의 모습. 새포르 1세는 말 위에 올라 있고 장군들은 왕의 지시를 따르고 있다. 가장 앞선 장군의 모습은 경주 원성왕릉(괘릉)의 무인상과 매우 흡사하다.

■바위에 새긴 페르시아의 장중한 역사

탕게초간 계곡에는 샤푸르 1세에게 생포되는 로마 황제 발레리안의 모습이 더욱 비참하게 그려져 있다. 샤푸르 1세의 말발굽 아래 발레리안이 짓밟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치열하게 벌어지는 로마군과의 전투 장면이 역동적으로 새겨져 있다. 바위벽에 새겨진 페르시아의 영광은 장중하다. 그러나 그것을 보존하려는 노력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어설픈 울타리가 고작이며 입구에서 손가락크기만한 입장권을 팔고 수거하는 관리인 두 사람이 고작이었다. 더러는 계곡을 끼고 뻗은 도로변에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버려진 부조들도 있었다. 그것은 호메이니의 혁명 이후 이슬람 왕조 이전의 페르시아 문명에 대해 떠받들고 기리는 것을 금기시한 영향이 클 것이다.

↑↑ 탕게초간의 계곡 바위벽에 새겨진 페르시아 기마부대의 모습. 세계적인 문화유산이지만 보존이 허술해 페르시아 문화의 훼손이 우려된다.

오랜 암흑기를 거쳐 이란이 다시 세계사의 중심으로 떠오를 수 있을까? 이란인들은 그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들의 조상이 오리엔탈 대제국을 건설했던 적이 있었고 조상의 용맹스러움과 지혜가 자신들의 DNA에 흐르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 빛바랜 역사를 죽은 자들이 부조로 남아 증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