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르시아 왕들의 석굴묘 낙쉐로스탐. 여기에는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를 다스리던 4명의 왕을 묻었다. 암굴묘의 정수리에 있는 바위산의 정상은 조로아스터교의 장례풍습인 조장을 행하던 장소다.

지난해 미국의 이란 제재 복원으로 한때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했던 대이란 교류가 다시 막혔다. 그러나 이란은 페르시아 제국의 중심지로 실크로드를 통한 신라와의 교역이 활발했던 곳이다. 익숙하지만 낯선 이란의 이야기를 통해 21세기 실크로드를 꿈꿔본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이 얼마나 강대한 국력을 지녔으며 그 왕들은 어떻게 주변 국가들을 제압하고 거대 제국을 다스렸는지 실감하려면 그들의 모습을 담은 부조를 보는 것이 가장 생경하다. 이란에는 곳곳에 바위를 쪼아 위대한 조상의 모습을 남겼으며 그것들은 주로 이란 남부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다. 페르시아 제국의 영광을 고스란히 느끼고 싶다면 시라즈를 중심으로 흩어진 유적과 부조를 훑어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것들은 고대 페르시아의 문화적 성과를 함께 보여주기도 한다.
 
↑↑ 단단한 바위산 중턱에 굴을 파고 왕을 장례함으로써 외적의 침입에서 보호하고 강대한 페르시아의 권위를 드러냈다. 무덤 아래에는 부조를 새겨 페르시아 왕조의 위대함을 표현했다.

■페르시아 왕이 묻힌 암굴묘, 강건한 위용 압권

이란의 페르시아 유적은 로마의 유적과 달리 꾸며지지 않은 채 민낯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아직은 관광산업에 대한 준비가 덜 돼서 그럴 수 있다. 그리고 체계적인 발굴과 복원이 이뤄지지 않은 탓도 있다. 그래서 페르시아의 유적은 시간의 물결에 씻기고 깎여서 바스라지기도 하고 모래언덕 속에 묻혀있기도 하다.

페르세폴리스조차도 아직 발굴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군데군데 복원이 진행 중이다. 인류 역사상 매우 중요한 유적임에도 불구하고 느리게 느리게 복원이 이뤄지고 있다. 곳곳에 비계가 설치돼 불꽃같았던 고대사의 한 장면을 고스란히 느끼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페르세폴리스가 폐허와 잔해로 역사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면 그곳에서 북서쪽으로 약 6km 정도에 위치한 낙쉐로스탐은 강건하게 원형이 보존되고 있어 대륙을 호령하던 그들의 위세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낙쉐로스탐은 호세인이라는 거대한 바위산을 깎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를 다스리던 4명의 왕을 묻은 암굴묘다. 다리우스 1세왕과 2세왕, 크세르크세스 1세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왕이 묻혀 있다. 구약성서에서도 주요배역으로 등장하는 이들의 주검이 묻힌 돌산의 높이는 약 60~70m 정도다. 돌산 위에는 조로아스터교의 장례방식인 조장을 행하던 터가 남아 있다.
 
↑↑ 당대 또 하나의 거대한 제국 로마제국을 침략해 용맹하게 싸우는 페르시아 왕의 모습을 부조로 새겨뒀다.

■ 천하를 호령하던 왕들의 이유 있는 침묵

어마어마한 규모의 묘역에 질려 하다가도 천하를 호령하던 이들의 생전의 모습과는 달리 무덤 속에 들어앉은 그들의 유해는 왠지 모르게 '갇혔다'는 느낌이 들었다. 깎아지른 절벽에 굴혈을 파고 작은 대문짝만한 출입구를 내놔 어느 누구도 쉽게 다가갈 수 없도록 유폐된 모습이다.

그 안에는 조장으로 독수리에 의해 육탈된 왕들의 유골과 살아생전 호사를 누리며 가졌던 각종 금은보화와 장신구들이 함께 묻혀 있다. 누군가가 무단으로 묘를 헐고 해코지를 할 것에 대비해 높은 절벽에 무덤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워낙 육중하고 두텁게 보이는 바위산이 대륙을 호쾌하게 달리던 영웅호걸의 기상을 가둬둔 듯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허술한 초소와 더 허술한 울타리를 가로질러 다가간 왕들의 무덤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드물었다. 1시간 여 머물렀지만 페르시아 왕의 무덤을 참배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은 젊은 이란인 3명이 고작이었다.

낙쉐로스탐에 묻힌 왕의 무덤은 십자가 형태를 띠고 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페르시아의 십자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역사학자들은 이 십자가가 기독교의 십자가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 연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추측은 견강부회일 수도 있다. 가로로 길게 왕의 묘를 만들고 그 위아래로 조로아스터교를 상징하는 부조를 새겨 자연스럽게 조형적 조화를 꾀한 것에 불과할 것이라는 생각이 합리적인 상상일 것이다.
 
↑↑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첫 왕인 아르데쉬르 1세가 조로아스터교의 최고신인 아후라 마즈다로 부터 왕위 계승을 인증받는 모습.

■두 개의 왕조가 공존하는 낙쉐로스탐

페르시아어로 낙쉐는 '그림'이나 '조각'을 뜻하는 말이고 로스탐은 신화에 등장하는 왕의 이름이다. 그러므로 '왕의 그림', 혹은 '왕의 조각'쯤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리스인들은 '탁테 잠쉬드'를 '페르시아인의 도시'라는 뜻의 페르세폴리스라고 불렀듯이 낙쉐로스탐을 '죽은 자들의 도시'라는 뜻의 '네크로폴리스'라고 불렀다.

이 거대한 무덤은 '도시'라고 말해도 크게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왕조의 왕들이 묻힌 무덤만 덩그렇게 있는 것이 아니라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사산왕조 시대의 왕들이 다양한 모습의 부조로 표현돼 있기 때문이다. 그 부조들은 매우 정교하게 조각돼 완벽에 가깝게 보존돼 있다.

↑↑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장군상. 가운데 장군상은 경주의 원성왕릉(괘릉)에 있는 무인상과 유사하다. 이 부조로 페르시아와 신라가 교류했다는 또 하나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사산왕조(226년~651년) 페르시아는 알렉산더가 아케메네스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세운 파르티아제국을 물리치고 재건한 새로운 페르시아 제국이다. 낙쉐로스탐에서는 사산왕조의 첫 왕인 아르데쉬르 1세가 조로아스터교의 최고신인 아후라 마즈다로 부터 왕위 계승을 인증받는 모습과 경주 원성왕릉의 무인상과 흡사한 장군의 모습, 페르시아 왕의 기마 전투 장면 등의 부조를 만날 수 있다. 그러므로 '왜 왕들의 무덤에 왕의 그림, 왕의 조각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였을까'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