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00년 전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제국을 건설했던 아키메네스 페르시아의 왕궁 페레스폴리스의 웅장한 위용.

지난해 미국의 이란 제재 복원으로 한때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했던 대이란 교류가 다시 막혔다. 그러나 이란은 페르시아 제국의 중심지로 실크로드를 통한 신라와의 교역이 활발했던 곳이다. 익숙하지만 낯선 이란의 이야기를 통해 21세기 실크로드를 꿈꿔본다.

이란인들에게 가장 위대한 왕으로 칭송 받는 '왕중의 왕'은 다리우스 대왕이다. 인더스강 유역과 나일강 유역에 이르기까지 영역을 넓혀 오리엔탈 대제국을 건설하고 아케메네스 페르시아를 당대 세계 최강으로 만들었다. 다리우스 대왕의 흔적이 고스란히 잘 남아 있는 곳은 고대 세계사의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페레스폴리스다. 이란 남부 도시 시라즈 외곽으로 약 40km 떨어진 곳이다.
 
↑↑ 페레스폴리스 내부 벽면장식의 사자상. 사자가 목우를 공격하는 모습은 강대한 제국 페르시아의 국력을 상징하며 훗날 페르시아를 상징하는 국장으로 사용된다.

■ '왕중의 왕' 다리우스의 왕권 통치 실현

다리우스 대왕은 반란을 일으키는 제후들을 차례로 제압하고 그 지역에 군사를 통수하는 사령관을 파견해 다스리게 했다. 그리고 그 지방의 언어와 종교, 법에 의해 살아갈 수 있는 자유도 함께 허용했다. 자유를 허용하는 대신 파견된 사령관들이 매년 정해진 세금을 어김없이 바치도록 하는 장치를 걸었다. 거기에 사령관의 전횡을 감시하는 비밀 행정관과 세금 담당관을 함께 파견하는 이중 장치도 걸었다. 형식적으로는 지방분권이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모든 권력은 왕에게로 집중됐다.

다리우스 대왕은 유럽과의 교역도 본격화 했다. 거대한 제국을 다스리기 위해서 필요한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최고의 산업이었던 농업을 장려해 관개시설을 개선하고 지하수로를 건설했다. 제국의 각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과 특산물은 모든 지역이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도록 했고 유럽에까지 영역이 확장됐다.

교역을 통한 영향력 확장은 문화의 영역도 포괄한다. 그래서 당시 유럽과의 교역과 함께 흘러 들어간 페르시아어들이 영어로 굳어졌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영어에서도 500개 이상의 단어가 페르시아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면 당시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천국(paridaeza→paradise), 가장 좋은(behast→best), 설탕(shakar→sugar), 오rt), 기타(sitar→guitar), 입술(lab→lips), 잠옷(paejamah→pajamas), 샌들(sandal→sandals), 현금(karsha→cash), 시장을 의미하는 바자르(bazaar) 등이 대표적이다. 이 단어들을 살펴보면 당시 페르시아에서 생산된 어떤 물품들이 유럽으로 건너갔는지 짐작할 수 있고 유럽인들의 생활과 사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보인다.

↑↑ 페레스폴리스를 건설했던 다리우스 대왕의 부조. 다리우스 대왕의 위쪽에는 조로아스터교의 최고 신인 아후라마즈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제국의 근간이 조로아스터에서 비롯됨을 상징한다.

■ 황성 옛터 페레스폴리스, 영광은 가고 흔적만 남아

황성 옛터인 페레스폴리스는 다리우스 대왕이 주춧돌을 놓았다. 잡초가 우거지고 길이 끊겨 인적이 닿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페레스폴리스는 넓은 국도와 인접한 곳에 잘 정비돼 있다. 이란은 관광 인프라가 아직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래서 그 유명한 인류의 문화유산인 페레스폴리스를 찾는 관광객은 대체로 이란 현지인들이다. 간혹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섞여 있지만 서양인들의 모습은 쉽게 찾을 수 없다.

다리우스 대왕은 키루스 대왕이 세운 왕도 파사르가드를 버리고 남쪽으로 더 내려와 '자비'라는 뜻을 가진 라흐마트 산 중턱에 왕궁을 건설한다. 그때가 B.C. 518년이다. 페르세폴리스라는 이름은 그리스의 역사가 플루타르코스가 쓴 '알렉산더전'에 처음 언급이 됐으며 '페르시아인들의 도시'라는 뜻이다. 그러나 페르시아 사람들은 이 도시를 '탁테 잠쉬드'라고 불렀다. '잠쉬드의 왕좌'라는 뜻이다. 잠쉬드는 페르시아 신화에 등장하는 신이 내린 왕이다. 페르시아인들은 다리우스 대왕을 자신들의 신화에 나오는 잠쉬드와 동일시했는지도 모른다.

↑↑ 알렉선더 대왕의 공격으로 불타 사라진 세계 최초, 최고의 제국 페르시아의 흔적이 페레스폴리스 유적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 세상의 모든 양식 도입한 예술적 왕궁 건설

페레스폴리스는 왕궁터와 왕궁을 떠받쳤던 기둥들, 기단들이 마치 거대한 공룡의 뼈처럼 남아 있다. 사람들은 그 뼈대 위에 눈대중으로 궁전의 형상을 짓고 화려한 금색 옷을 입힌다. 강대한 제국 페르시아의 위용에 걸맞은 왕궁을 다 짓고 다시 머릿속 상상의 집채를 허물면 세월의 먼지처럼 왕궁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잔해만 남는 것이다.

상상을 고증에 의해 재구성해보면 이렇다. 다리우스 대왕은 이 왕궁을 짓기 위해 제국에서 가장 우수한 건축가와 예술가들을 불러 모았다. 페르세폴리스의 건축물은 이들에 의해 가장 예술적으로 꾸며졌고 서양 건축사에 큰 영향을 미친다. 페르세폴리스를 형성한 건축 방식은 다국적이다. 제국의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진흙 벽돌은 바빌론 양식이고 지붕을 지탱하게 한 목재 기둥은 레바논 양식이다. 왕궁은 바빌론 양식과 아시리아 양식, 이집트 양식이 섞였다. 건축 자재들은 이집트와 인도에서 가져왔고 금은 지금의 터키 지역인 사르디스에서 가져왔다. 돌은 현지에서 캐냈지만 그 돌을 다듬는 방식은 리디아 양식과 이오니아 양식을 혼용했다.